SBS 창사특집대기획 <운인가 능력인가> 2부작은 우리 사회의 불공정 불평등에 대한 의미 있는 접근을 했다. 손쉽게 결과를 낼 수도 없고, 결론을 내고 실제 사회에 적용하는 것에도 긴 호흡으로 뚝심 있게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묵직한 주제였다. 성공이란 운인가 아니면 능력인가?
노력의 대가가 사라지는 사회;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청춘과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청춘, 그 차이는 지금이 아닌 미래다
인간의 삶을 좌우하는 성공은 과연 운과 능력 중 어느 것이 크게 좌우하는 것일까? 운만 따라온다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는 없다. 노력하는 과정 중에 운까지 따라줘야 성공이란 큰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력을 해도 행운이 찾아오기 힘들어진 불운의 시대는 결국 사회 시스템의 문제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운과 능력 사이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핵심은 바로 '불운'이다. 불운을 얼마나 제거 하느냐가 곧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해법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얼마나 불운을 최소화 하느냐가 곧 행복으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이를 줄여가는 과정이 곧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는 핵심 요소라는 점이다.
1부에서는 을과 을의 대결 구도 속 분노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공기업으로 축소해 그 분쟁이 더욱 크게 보였지만, 을과 을 혹은 병과 병의 대결이 일상화 되기 시작한 우리 사회는 불안하다. 갑은 이런 그들 만의 싸움을 즐기고 있다. 작은 빵 덩어리를 던져주면 알아서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을 뿐이니 말이다.
공공의 적을 놔두고 약자들끼리 누가 더 약자인지 증명하는 듯한 이 싸움은 씁쓸하기만 하다. 어렵게 몇 년 간 고생해 얻은 공기업 취직.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정규직이 된 사람들과 사이에 논란은 시작되었다. 부정 입학한 정유라와 그들이 뭐가 다르냐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한 탓이다.
서로 입장을 보면 모두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과정 속에서 시험이 추가되며 그 결과에 대한 서로 다른 가치의 충돌은 쉽게 이해될 수 없도록 만든다. 시험이라는 제도가 모든 것의 가치의 기준이 되는 순간 모든 것은 소멸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제고사처럼 모든 기업이 비슷한 날짜에 대규모 직원을 뽑는다. 공무원 시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 빈자리가 생기면 신입 사원을 뽑는 형태다. 우리 식의 시험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방식의 시험이 아닌 그가 얼마나 직무에 적합한 일들을 해왔는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시험. 그 시험을 통과해 입사를 해도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하는 이들이 많다. 직무 적합도가 떨어지는 시험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되묻게 만들 뿐이다. '최후 통첩 게임'은 그래서 흥미롭다. 합리적 결정을 하던 이들도 시험을 통해 제안자와 응답자로 나누면 완전히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공정하게 모두 나누던 모습은 사라지고 시험 결과가 자신보다 좀 더 나은 제안자의 부당한 제안을 받아들이는 응답자의 모습은 우리 사회다. 모두가 그런 제안을 받지는 않는다. 7:3의 제안을 거절해 제안자와 응답자 모두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경우. 최악이지만 그런 공멸의 상황들도 우리에게는 존재한다는 것이 두렵다.
외국에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기이한 질문과 답이 가득한 입사시험. 무엇을 위한 시험인지 알 수 없는 시험으로 회사에 입사한 이들의 경쟁력은 과연 어떤 것인지 의문을 품게 한다. 그저 단순 업무만 요구하는 직장 상사에 더는 참지 못하고 공기업을 나올 수밖에 없었던 한 청춘을 통해 과연 시험 만능주의 사회는 누구를 위함인지 되묻게 한다.
합리적인 인재 고용이 아닌 편리를 앞세운 시험이라는 형식은 결과적으로 사회적인 낭비만 초래한다. 고민하기 싫어 사회적 낭비를 확대 시키는 현재의 방식은 그래서 변화가 절실해진다. 미국의 능력 사회가 정답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자기가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는 합리적인 방식이 최선이라 믿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미국의 시스템은 철저하게 강자만 살아남는 정글과 다를 바 없다. 패자에게 그 어떤 배려도 없는 사회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패자가 늘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거리를 가득 채우는 미국인들의 모습은 불안이 점점 극대화 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폭발을 앞둔 그 미묘한 차분함은 현재의 미국의 모습이기도 하다. 기회를 잡아 엄청난 성공을 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그 성공의 이면에는 수많은 실패자들이 존재한다. 한 번 실패하면 더는 일어설 수 없는 사회는 모두를 공포에 떨게 만든다. 그런 기형적인 행태가 행복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자원도 그렇다고 세계적인 기업도 없는 핀란드의 성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편적 복지를 통해 사회 경쟁력을 키운 나라. 물론 우리 보다 1/10인 인구만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실험이고 결과였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5천만 대한민국 역시 충분히 핀란드가 될 수 있다.
핀란드하면 떠오르는 것은 노키아였다. 하지만 노키아가 몰락하며 핀란드 전체는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역시 많은 이들은 삼성이 무너지면 모두가 붕괴한다는 말을 할 정도로 특정 기업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다.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핀란드를 일으켜 세운 것은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안정적인 직업을 찾기 위해 공무원이 되기보다 창업에 뛰어들었다. 다양한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은 청년 세대들로 인해 핀란드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물론 핀란드 청년들이 우리와 달리 공무원이 아닌 스타트 업에 뛰어들 수 있게 한 가장 큰 이유는 존재한다.
핀란드 청년들은 도전 후 실패를 좌절로 생각하지 않는다. 실패가 곧 성공을 위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그들에게 도전은 부담이 적다. 적은 임대료로 거주할 수 있고, 생활이 가능한 사회는 그들에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준다.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도전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 실패는 곧 헤어 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이 되는 현실 때문이다. 주거 비용이 수입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현실 속에서 성공 가능성이 낮은 스타트 업에 모든 것을 걸 수가 없다. 그 현실적 문제가 결국 큰 차이를 만들고 있다.
기본적으로 청년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실패를 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 보편적 복지를 위한 노력이 이어져야 하지만, 여전히 복지는 곧 국가 몰락이라 주장하는 한심한 정치꾼들로 인해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이 결국 청년들의 발목을 잡는 이유가 되고 있다.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된 사회. 그런 사회는 결국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만들어진다. 이탈리아 카탈리나 대학의 물리학자와 경제학자가 만나 부와 성공을 수량화 하는 실험을 한 결과는 흥미롭다. 운칠기삼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건 같은 노력을 했을 시 달라지는 결과치다.
인도네시아 라멜레라 마을은 고래 잡이로 살아가고 있다. 그곳의 아이들의 꿈은 작살잡이가 되는 것이다. 고래를 잡는 것이 곧 최고의 능력자가 된다는 점에서 당연하다. 작살 하나로 고래를 잡는 이들 마을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고래 잡이가 허용된 곳이다. 그들에게만 주어진 특혜라면 특혜이기도 하다.
라멜레라 마을을 주목해야만 하는 것은 고래를 잡는 행위가 아니다. 잡은 후 그들이 하는 전통이다. 그들은 잡은 고래를 균등하게 나눈다. 작은 고래만이 아니라 큰 고래를 잡아도 나눈다. 같은 배에 탄 이들 만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일정한 배분 원칙 하에 나눈다.
남편을 잃은 아내는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돕는다. 그들은 '불운'을 줄이는 것이 공동체의 행복을 키우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라멜레라 마을과 비슷한 방식은 핀란드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불운을 줄이는 방식으로 핀란드는 복지를 늘리고 안정시키고 있다.
복지가 너무 좋으면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과 달리, 핀란드에서는 2, 3달 휴식 후 새로운 일을 찾기 시작한다고 한다. 실제 이런 실험에 나선 실험자 역시 좋은 복지가 인간을 나태해지게 만들지 않는다고 했다. 인간의 본능은 그저 안락한 삶만이 아니라 일을 원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기본 소득 실험은 일을 하지 않는 부작용을 없앴다. 아르바이트라도 하게 되면 국자 지원을 받지 못하는 방식을 제거하고 한화 70만원 정도의 지원을 무조건 지원해 최소한 안정적 삶을 도모하고 일을 찾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은 어쩌면 우리 사회도 시도해야 할 삶의 방식일 것이다. 일부 지자체에서 시도하고 있기도 한 이 실험의 핵심은 '불운'을 줄이기 위한 방식이다.
핀란드에 정착해 살고 있는 한국인 가족의 모습에서 행복이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한다. 학교에 가기 전에 공부를 시켜야 하는 것과 달리, 핀란드 학교는 교육은 자신들의 몫이니 집에서는 모국어만 쓰도록 하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게 곧 핀란드의 경쟁력이라는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30% 정도의 세금을 내지만 최고 많이 내는 군은 80%까지 낸다고 한다. 그 세금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곧 사회의 질과 미래를 결정한다. 핀란드는 그 세금을 통해 국민들이 '불행'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줄여가고 있다. 그 불행이 줄어드는 사회는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이탈리아 학자들이 실험한 최고의 행복은 결국 모든 이들에게 공정한 금액이 지불되었을 때였다. 모두가 동등한 금액이 지불되는 것은 불안을 제거해준다. 성공했다고 다음에도 성공할 것이라 확신할 수 없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것은 곧 행복과 직결된다. 그런 점에서 불운을 얼마나 줄여나갈 수 있을까? 그게 곧 우리가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우연한 발견의 행운 '세렌디피티'를 우리도 찾을 수 있을까? 쉽지 않다. 하지만 핀란드는 그런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크지 않은 나라 대한민국. 충분히 가능한 도전이다. 불운을 줄이고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이를 통해 미래 세대도 행복해질 수 있는 나라. 그 나라를 만들기 위한 시작은 늦었지만 이제라도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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