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게임을 주제로 한 드라마인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16회로 막을 내렸다. 새로운 소재를 다뤘다는 점에서 분명 용기 있는 시도였다. 하지만 드라마적인 재미는 중반을 넘어서며 힘이 떨어지기 시작해 아쉬움을 줬다. 합리적 결론을 내기는 했지만, 이야기의 양은 13회 정도 분량을 늘린 느낌이라는 점에서 아쉽다.
인던에서 나온 진우;
황금 열쇠로 모든 버그 잡아낸 진우는 1년 후 세주처럼 돌아왔다
가상의 미래 이런 식의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볼지도 모른다. 기술적으로 이런 상황들은 불가능한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완성도는 점점 높아지고 우린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변화되는 세상과 직면할 수밖에 없다. 지난 100년의 변화보다 최근 10년의 변화가 더 극적이듯 말이다.
병준은 사망했다. 게임 속 아들은 마치 저주를 내리듯 다시 등장해 아버지를 공격했다. 진우를 죽이기 위해 열었던 서버는 결국 병준을 죽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다. 죽음을 유발하는 게임은 진우가 다시 엠마를 만나며 끝이 났다. 진우가 가지고 있던 황금 열쇠는 버그가 되어버린 사망자를 완전 삭제하는 방식으로 끝이 났으니 말이다.
형석을 시작으로 병준과 정훈을 황금 열쇠로 제거했다. 그리고 진우 역시 엠마에게 가슴에 찔리며 사라졌다. 모든 버그는 그렇게 완료되었다. 이 상황에서 왜 진우만 게임 속에서 살아 있었던 것일까? 의문이 있을 수는 있다. 앞선 세 명과 진우가 다른 이유는 단 하나다.
앞선 이들 세 명은 이미 게임 과정에서 사망한 존재들이다. 사망해서 마치 좀비처럼 게임 속에서 떠도는 존재로 전락했다. 이미 사망한 자들이 버그가 되었고, 황금 열쇠가 그 버그를 제거하게 되었다. 제거된 그들이 NPC로 다시는 등장할 수 없게 되었다.
진우의 경우 사망자가 아니다. 진우 자체가 버그라는 이유는 엠마가 만든 버그의 시작점에 진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형석이 사망하게 되었다. 진우 자체가 버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게 버그가 되어버린 진우도 게임 속에서 사라지는 운명이었지만, 개발자인 세주는 하나의 희망을 만들어냈다.
자신을 살린 이가 마스터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능력을 준 것이다. 그로 인해 진우는 죽음이 아닌 마스터의 능력으로 인던 속에서 자신을 감출 수 있었다. 인스턴트 던전으로 마스터이자 개발자인 세주가 만든 비밀 창고와 같은 공간이다. 그곳은 기묘하게도 게임 만이 아니라 실제 세상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세주가 1년 만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 역시 이런 기능 때문이다. 세주가 1년 만에 돌아왔다는 설정 자체가 진우 역시 1년 후 돌아올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먼지가 되어버린 인물들을 바라보며 울 수밖에 없었던 희주와 선호는 남겨진 자들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진우까지 사라진 후 게임은 자동으로 리셋되었다. 그동안 모든 자료들은 사라지고 무가 되어버린 게임. 그 게임을 살리느냐 아니면 버리느냐의 기로에 선 선호는 개발을 다시 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리고 사라진 진우에게 매일 이메일을 보내는 선우는 그 모든 상황들이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희주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사라졌다. 많은 이들은 사망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희주가 믿는 희망은 세주를 통해 발현된다. 자신의 동생도 1년이 넘게 사라졌었다. 모두가 죽었다고 믿었지만, 희주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세주도 돌아왔다.
1년이 지난 후 고유라는 비밀 결혼식을 올렸다. 진우가 살인자라고 증언했던 내용은 근거가 없었고 이로 인해 무고죄로 벌을 받아야 했다. 음주운전까지 더해지며 고유라는 연예계에서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최악의 상황에 처한 고유라가 택한 것은 결혼이었다.
60대에 자식이 둘이나 있는 돈 많은 인물에게 결혼한 고유라의 삶은 여전히 엉망진창일 뿐이다. 병준의 1주기 수진은 시아버지의 재산 모두를 재단에 기부했다. 엄청난 금액을 모두 재단에 기부한 수진은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잔인하기만 했던 병준의 돈을 아들에게 남겨 줄 수는 없다고 했다.
진우가 사라진 지 1년이 지난 후 '넥스트'라는 게임으로 공식 출시되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게임은 사람들을 매료 시켰지만, 그만큼 문제도 많이 만들어냈다. 사람들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던 세주는 선호의 도움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 개발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세주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모든 것들은 제자리를 찾아갔다. 희주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들른 커피숍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게임이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총을 쏘는 캐릭터가 나왔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희주는 안다. 모두 경험을 해봤던 것이니 말이다. 게임이 다시 만들어지기 위해 1년이 걸렸다. 그리고 그렇게 게임이 다시 세상에 등장하며 인던에 있던 진우도 세상 밖으로 나왔다. 게임이 만약 개발되지 않고 그렇게 사장 되었다면 게임 속 인던에 숨어있던 진우도 사라졌을 것이다.
게임이 출시되며 인던에 있던 진우도 다시 세상에 나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진우를 목격한 장소로 향하는 희주와 여전히 위험에 처한 유저를 돕는 진우의 뒷모습은 이들의 미래를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16번의 이야기는 그렇게 게임처럼 마무리되었다.
분명 새로웠지만 아쉬움도 컸다. 송재정 작가가 색다른 소재를 주제로 삼기는 하지만 마무리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색다른 소재라는 점에서 이를 소화 시키는 능력이 부족해질 수는 있다. 그러나 반복되면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내용을 보면 12회에서 13회 분량 정도로 보면 족하다.
이야기를 끄집어 내기에 한계가 있었다는 의미다. 더 확장을 하거나 이를 통해 극적인 마무리를 만들어내기에 힘겨웠다는 의미이기도 한다. 마지막 회 등장하는 상황들은 뜬금없지는 않다. 충분한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합리적 결론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주가 사라지고 그를 구조하는 과정에서 엇박자가 나고 더딘 흐름으로 막히며 아쉬움을 더했다. 새로운 전개를 통해 이야기가 더 풍성해질 수도 있었지만, 진우와 희주의 사랑이 등장하며 이야기는 오히려 다른 길을 걷게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결말을 위한 설정으로 중요한 것이 사랑이지만 그 과정이 매끄럽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비난을 받을 정도로 비겁한 드라마는 아니다.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것 만으로도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시작과 함께 절반의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비록 매끄럽게 이야기가 이어지고 만족스러운 결말로 나아가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말이다. 송재정 작가가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은 언제나 응원한다. 그렇게 한국 드라마의 외연을 넓히는 촉발제가 되어주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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