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릿대로 뒤덮인 한라산, 그 현장을 가다.
한라산 학술조사팀과 동행할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영실코스로 올라서 선작지왓과 윗세오름을 거쳐 장구목의 조릿대 연구 상황을 살펴보고, 남벽으로 이동하여 화산활동으로 인한 토양의 변화, 그리고 훼손된 남벽의 상태를 살펴보는 코스입니다. 평소 한라산에 관심이 많았던 저로서는 아주 유익한 기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길을 따라 나섰습니다.
<한라산의 영실코스는 언제는 새로운 모습을 선사합니다. 철쭉이 만개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올해는 예년에 비해 상당기간 늦게 핀다고 합니다. 그래도 해발 1600미터 고지대에 위이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실망을 주지 않습니다.>
가장 관심 있게 살펴 본 것은 조릿대입니다. 한라산 고지대 식물의 80% 가까이 조릿대가 잠식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조릿대가 왕성해지면서 한라산 생태에 많은 변화를 가져 오는 만큼 다양한 연구들이 이뤄지고 있고 조릿대에 의한 장단점들도 다양하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백년도 살지 못하는 우리들이 무려 180만 년 전에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한라산의 생태계에 대해 인위적인 방법으로 변화를 꽤하려는 것 또한 사실 심각한 오류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듭니다.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오래전에 지금과 같은 자연 환경이 반복되어 왔는지 모를 일,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의 순리대로 보존하는 것 또한 심각하게 고민이 되어야 할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한라산연구에 힘쓰시는 박사님 몇 분과 제주세계자연유산 서포터즈로 활동하고 있는 몇 분이 처음 도착한 곳은 선작지왓, 봄이면 털진달래를 시작으로 산철쭉이 만발하여 천상의 화원으로 소문이 난 곳입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이곳에는 상당부분 진달래나 철쭉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바로 조릿대 때문입니다.
<뒤로 백록담이 한눈에 들어오는 선작지왓, 그곳에는 이처럼 조릿대가 상당부분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철쭉이 피어 있어야 할 자리에는 황금 들녁에 익어가는 보리밭처럼 누렇게 변했습니다.>
조릿대는 줄기를 잘라 조리(복조리)를 만들면서 조릿대라고 불러지기 시작했다는데요, 산에서 자라는 대나무라 하여 산죽이라고도 합니다. 이 조릿대가 왕성하게 번식을 하면서 주변의 식물들이 자라지 못하고 다 고사한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을 겁니다. 실제로 선작지왓에 가보면 고사한 진달래와 철쭉나무들이 상당수 눈에 들어옵니다.
한라산의 과거 모습은 아무도 알지를 못합니다. 수천, 수만 년 전에 지금처럼 조릿대가 왕성했던 시기가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죠. 하지만 경관을 중시하는 요즘,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가장 아름다웠던 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서 어느 정도 잠식을 당하고 있는지, 예전처럼 복원은 가능한 건지, 복원했을 경우 어떠한 부작용이 생길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각도로 연구하고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1991년에 찍었던 사진과 최근에 찍은 사진들을 비교해 보면 상당부분 진달래 군락들이 고사한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진달래와 철쭉 등 조릿대 번식으로 인해 줄어든 생물종 다양성을 회복 또는 증가시켜 안정적인 한라산 생태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 조릿대에 관한 연구입니다.
<과거 진달래와 철쭉꽃이 왕성했던 지역을 중심으로 조릿대를 벌채하여 생태 변화를 관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릿대를 제거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얘기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조릿대는 균열이 심한 화산암과 응집력이 약한 토양의 화산회토를 강하게 잡아주면서 훼손속도를 늦춰주고 공기 중 탄소를 현저하게 떨어뜨리는 이로운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2016년에는 해발 1400미터 이상의 지역인 만세동산 일대에 말을 방목하여 연구를 시작함과 동시에 장구목과 선작지왓, 진달래밭 일대 총 2만8천 평방미터에 벌채 실험을 통해 생태 변화를 관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방법으로는 전면적인 벌채와 함께 부엽층만 제거하는 방법, 그리고 둘러베기 등으로 다양하게 나누어 실시하는 만큼 초본층 식물의 종다양성과 개체수 증가가 확연히 드러나고 관목의 생육상태가 확연하게 개선이 된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조릿대를 벌채하고 난후 토양과 토질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입니다.
<토양의 표본도 수시로 채취하여 어떻게 변해 가는지 관찰하고 있습니다.>
우리 일행들은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마치고 남벽코스로 진입을 합니다.
과거 정상방향 등반코스인 서북벽 코스와 갈라지는 삼거리 인근에 조릿대 연구 지역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미처리된 상태와 함께 단계별로 베기, 관목주변만 둘레베기, 1차, 2차, 3차 베기 등 상황에 따른 자연의 변화를 다양하게 관찰하고 있는 지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릿대 벌채에 따른 식생변화연구는 2020년까지 이어질 예정이라고 합니다.
조릿대가 잠식하면서 모습을 감추고 있던 진달래와 철쭉 관목들, 조릿대를 벌채함으로서 관목이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났습니다. 이중에는 조릿대에 의해 고사한 관목들도 상당수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실선을 중심으로 왼쪽은 세 번 베어낸 곳, 오른쪽을 두 번 베어낸 곳입니다. 한번 베어낸 곳은 더욱 왕성하게 조릿대가 번성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요, 한번만 베어내면 베어낸 부분에서 또다시 여러 갈래의 줄기가 뻗어 나오는 조릿대의 특성 상, 번성을 막기 위해서는 수차례 벌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관목 주변으로 완성했던 조릿대를 제거함으로서 관목 아래쪽으로 새로운 줄기와 싹이 돋아나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관목주변으로만 조릿대를 제거하는 둘레베기를 통해 연구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완전히 고사해버린 관목도 상당수 눈에 들어옵니다.
장구목 벌채구역에서 연구 상황을 둘러본 뒤 남벽을 통해 정상으로 향합니다.
남벽분기점 인근에는 철쭉이 약간 피긴 했지만 화려하게 만개를 하려면 일주일 이상은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라산지질에 대해 오래전부터 연구를 해오고 있는 안웅산 박사입니다. 지금까지 백록담 주변에는 현무암에서 조면암에 이르는 암석들이 분포된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 최근에 조면암보다 더 분화된 유문암이 확인되었고 그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한라산 정상 백록담은 3만7천 년 전 발생한 두 차례의 화산폭발로 분화구가 만들어졌으며 삼각봉, 영실계곡, 백록담 순으로 폭발이 일어났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남벽을 통해 정상으로 오르던 중 뒤로 돌아본 풍경입니다. 남벽관리소 인근으로 철쭉 군락이 보이는데요, 아직은 꽃이 피질 않아서 화원의 모습은 볼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훼손된 모습을 하고 있는 남벽등산로, 남벽은 과거 정상으로 오르던 루트 중에 하나였습니다. 지금은 한라산 정상을 가려면 관음사나 성판악 코스로만 가능한데, 과거에는 어리목이나 영실코스로도 정상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바로 서북벽 코스입니다. 아찔하게 바위절벽을 타고 오르던 그 짜릿함은 세월이 흘러도 잊을 수가 없는데요, 등반로가 훼손되면서 안전이 위협받게 되자, 서북벽을 통제하고 대안으로 개방을 한 곳이 바로 남벽코스입니다. 당시 한라산 등반객의 상당수는 어리목이나 영실로 정상에 올랐던 관계로 정상코스 개방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등산객들이 남벽으로 몰리면서 급격하게 훼손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지형이나 지리적으로 취약한 지역인 남벽으로 등산로를 만든 자체가 패착이었던 것이지요. 결국 남벽등산로 마저 1994년에 통제를 하게 됩니다.
훼손되었던 등산로는 아주 천천히 그들만의 방식으로 복원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정상부근, 급격하게 훼손된 지역에는 인위적으로 생태복원을 실시했는데 아직도 복원은 더디기만 합니다. 한번 망가진 자연을 복원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남벽 정상에서 바라본 백록담의 모습입니다.
봄 야생화들이 화려한 꽃밭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얼마 전 많은 비가 내렸던 한라산 만수를 이뤘던 물이 급격하게 빠져나가는 것을 확연하게 드러난 수위 띠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연구에 의하면 백록담의 수위는 하루에 7~8cm씩 줄어든다고 합니다. 한라산의 토양 자체가 물이 빠지는 구조라서 어쩔 수가 없는 부분입니다.
제주도의 심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한라산, 이번 기회에 한라산의 소중함과 자연과의 공존을 위해서 그곳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 한 번 더 알아가는 기회였지 않나 생각합니다.
올 가을부터는 한라산의 급격한 훼손을 막기 위해서 탐방예약제를 실시한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오는 10~12월 탐방 예약제를 시범 운영한 후 내년부터는 본격 시행하는 것인데요, 한라산 정상을 갈수 있는 성판악코스와 관음사 코스가 이에 해당됩니다. 하루에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인원은 성판악 코스는 720명, 관음사 코스는 426명 등 모두 1146명으로 제한됩니다. 제주도는 이를 위해 온라인 예약시스템을 구축한 뒤 한 달 전부터 선착순으로 등반객을 받을 예정이니 알아두시면 좋을듯합니다.